그리스 신화 속 전쟁의 시작은 칼과 창이 아닌, 사랑과 선택에서 비롯되었다. 바로 그 중심에는 파리스(Paris)가 있다. 트로이 왕자의 아들이자, 트로이 전쟁의 원인으로 잘 알려진 그는 단순한 ‘전쟁의 불씨’가 아니다. 신들의 갈등, 인간의 사랑, 도덕적 책임이라는 복합적인 주제를 안고 있는 인물이다.
1. 파리스는 누구인가?
파리스는 트로이 왕 프리아모스(Priamos)와 왕비 헤카베(Hecabe)의 아들로 태어났다. 하지만 그의 탄생에는 불길한 예언이 함께했다. 그는 트로이 왕국을 멸망시킬 운명이라는 신탁을 받았고, 이에 따라 왕실은 그를 버린다.
그러나 파리스는 죽지 않고 목동으로 자라게 되고, ‘알렉산드로스(Alexandros)’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평범한 삶을 살게 된다. 그는 탁월한 미모와 신체 능력을 지녔고, 양치기로 지내던 중 신들의 심판자로 선택되는 운명을 맞이한다.
2. 세 여신의 심판 – 황금 사과의 선택
트로이 전쟁의 직접적인 발단은 ‘황금 사과 사건’에서 비롯된다. 신들의 잔치에 초대받지 못한 불화의 여신 에리스(Erīs)는 “가장 아름다운 여신에게”라는 문구가 새겨진 황금 사과를 던진다. 이를 두고 헤라, 아테나, 아프로디테 세 여신이 서로 다툰다.
신들은 인간인 파리스를 심판자로 삼고, 각 여신은 자신이 선택되기 위해 뇌물을 제안한다.
- 헤라 : 권력과 부를 줄 것
- 아테나 : 전쟁에서의 승리와 지혜
- 아프로디테 :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 헬레네를 아내로 주겠다
파리스는 아프로디테의 제안을 택하고, 헬레네를 얻기 위해 스파르타로 향한다. 이 선택은 곧 트로이 전쟁이라는 거대한 파장을 불러온다.
3. 헬레네와의 사랑, 그리고 전쟁
헬레네는 이미 스파르타의 왕 메넬라오스의 아내였다. 하지만 파리스는 그녀와 함께 트로이로 도망치고, 이를 계기로 그리스 연합군은 헬레네를 되찾기 위해 전쟁을 선포한다.
그 결과로 10년에 걸친 트로이 전쟁이 벌어지고, 수많은 영웅들과 도시가 희생된다. 파리스는 신화 속에서 전쟁의 원인 제공자로 흔히 비판받지만, 동시에 그는 사랑과 감정에 충실했던 인간적인 존재로 해석되기도 한다.
4. 전사로서의 파리스
전쟁 중 파리스는 단순한 왕자가 아닌 궁술의 달인으로 묘사된다. 그의 가장 유명한 장면은 바로 그리스의 최고 영웅 아킬레우스(Achilles)를 화살로 죽인 장면이다. 그는 신의 도움을 받아 아킬레우스의 약점인 발꿈치를 정확히 맞춰 치명상을 입힌다.
하지만 동시에 그는 영웅적이지 않은 존재로 그려지기도 한다. 그는 직접 전면전에 나서기보다는 후방에서 궁술을 사용하는 인물로, 그리스의 전형적인 ‘용맹한 영웅’ 이미지와는 다소 거리가 있다.
5. 죽음과 인간적인 면모
파리스는 전쟁 중 자신의 연인 오이 노네(Oenone)의 도움을 거절했다가 치명상을 입고 죽음을 맞는다. 오이노네는 치유 능력이 있었지만, 자신을 떠난 파리스를 처음엔 외면하고, 결국 그가 죽자 자책 끝에 자살한다.
이 장면은 파리스가 신과 인간, 사랑과 책임 사이에서 갈등한 인물임을 보여준다. 그는 어쩌면 단순한 욕망보다 자기감정과 신들의 뜻 사이에서 방황한 인간이었을지도 모른다.
6. 파리스 관련 예술 작품
문학
- 《트로이의 여인들》(The Trojan Women) – 에우리피데스
→ 전쟁 이후 트로이 여성들의 비극을 그린 비극극. 파리스의 선택이 초래한 비극이 간접적으로 드러남 - 《일리아스》(Iliad) – 호메로스(Homer)
트로이 전쟁을 배경으로 한 서사시로, 파리스가 헬레네를 데려간 사건 이후의 전쟁 이야기를 다룸
→ 파리스는 헬레네의 납치자이자, 아킬레우스를 죽인 인물로 등장
회화 작품
- 《파리스의 심판》 (The Judgement of Paris)
- 작가 : 루벤스(Peter Paul Rubens), 레노르망, 보티첼리 등 다양한 작가들이 그린 명작
- 내용 : 황금 사과를 두고 세 여신(헤라, 아테나, 아프로디테) 사이에서 파리스가 선택하는 장면을 묘사
- 상징성 : 인간의 선택, 아름다움, 권력, 사랑의 갈등을 표현
영화 및 드라마
- 영화《트로이》(Troy, 2004)
- 배우 올란도 블룸(Orlando Bloom)이 파리스 역
- 헬레네와의 사랑, 전쟁의 발단, 아킬레우스를 죽이는 장면이 묘사됨
- 파리스를 로맨틱하면서도 우유부단한 인물로 그려냄
✅ 요약정보
- 정체: 트로이의 왕자, 프리아모스와 헤카베의 아들
- 별명: 알렉산드로스 (Alexandros)
- 주요 사건
- 어린 시절, 예언(트로이를 멸망시킬 운명)으로 인해 버려졌으나 목동으로 성장
- 황금 사과 사건에서 세 여신(헤라, 아테나, 아프로디테) 중 아프로디테를 선택
- 헬레네를 얻고 스파르타에서 트로이로 데려오면서 트로이 전쟁 발발
- 특징
- 뛰어난 미모와 궁술 실력
- 아킬레우스의 발뒤꿈치를 화살로 맞혀 죽인 인물
- 사랑에 충실했지만, 그로 인해 전쟁과 파멸을 불러온 인물
- 죽음 : 전쟁 중 상처를 입고, 옛 연인 오이노네에게 도움을 청했으나 거절당하고 죽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