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신화 속에는 수많은 영웅과 전사들이 존재하지만, 고요히 중심을 지키는 인물들 역시 잊을 수 없다. 페넬로페(Penelope)는 오디세우스의 아내로, 『오디세이아』에서 남편의 귀환을 20년 동안 기다린 상징적인 여성이다. 그녀는 단순한 '기다리는 아내'를 넘어, 지혜와 인내, 충성심, 그리고 자기 주도적인 판단을 가진 강인한 인물로 그려진다.
1. 그녀는 누구인가?
페넬로페는 스파르타의 왕 이카리오스와 폴리카스트의 딸로, 뛰어난 미모와 지성을 지닌 여인이었다. 그녀는 오디세우스와 결혼하여 이타카 섬의 왕비가 되었으며, 둘 사이에는 아들 텔레마코스(Telemachus)가 태어난다. 그러나 트로이 전쟁이 발발하고 오디세우스가 참전하게 되면서, 그녀의 삶은 전혀 다른 국면으로 들어가게 된다.
남편이 집을 떠난 후 무려 20년 동안, 그녀는 끊임없이 결단을 내려야 했다. 남편이 살아 있는지 죽었는지조차 알 수 없는 상황에서, 페넬로페는 왕국과 아들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홀로 싸워야 했다.
2. 기다림의 상징, 그러나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다
『오디세이아』 속 페넬로페는 흔히 기다림의 대명사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녀의 기다림은 단순히 수동적인 인내가 아니다. 그녀는 오디세우스가 돌아올 것이라는 희망과 믿음, 그리고 ‘왕비’로서의 책무 사이에서 지혜롭게 버텨낸 인물이다.
남편이 돌아오지 않는 사이, 이타카 왕국에는 수많은 구혼자들이 몰려든다. 페넬로페는 정략적으로 재혼을 강요받기도 하고, 구혼자들에 의해 재산과 왕권이 위협받기도 한다. 그러나 그녀는 결정을 미루며 시간을 벌기 위해 ‘직조술’을 이용한 계략을 펼친다.
“나는 오디세우스의 아버지인 라에르테스를 위한 수의(옷감)를 짜고 있습니다. 이 일을 마친 후에야 재혼을 생각하겠습니다.”
이 말을 내세운 그녀는 밤마다 짰던 천을 몰래 다시 풀며, 몇 년의 시간을 벌어낸다. 이 유명한 일화는 그녀의 지혜와 자기 주도성을 상징한다.
3. 아내이자 정치인, 그리고 어머니로서의 역할
페넬로페는 단지 아내로서의 역할뿐 아니라, 아들의 보호자이자 왕국의 수호자였다. 어린 아들 텔레마코스는 아버지 없이 성장해야 했고, 그녀는 아들을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지켜야 했다. 특히 구혼자들이 텔레마코스를 제거하려는 음모를 꾸밀 때, 그녀는 자신의 감정과 두려움을 억누르며 침착한 판단력으로 행동한다.
또한 왕국의 통치자로서 그녀는 외교적 언행, 침착한 대응, 그리고 자신의 신분에 대한 자각을 바탕으로 수많은 남성들과 대치한다. 이는 고대 여성의 전형적인 이미지에서 벗어난, 강인하고 독립적인 여성 지도자상을 보여준다.
4. 오디세우스와의 재회, 그리고 진정한 검증
마침내 오디세우스가 수많은 고난 끝에 이타카로 돌아왔을 때, 페넬로페는 섣불리 그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구혼자들 사이에서 자신을 속이려는 자들이 많았던 만큼, 그녀는 오디세우스를 직접 시험한다.
그녀는 신중하게 이렇게 말한다.
“우리의 침대를 밖으로 옮겨야겠어요.”
이 말은 곧 진짜 오디세우스만이 알 수 있는 비밀, 즉 부부의 침대가 움직일 수 없는 나무뿌리 위에 지어진 것임을 이용한 시험이었다. 오디세우스는 이에 격렬하게 반응하며 진실을 증명하고, 두 사람은 드디어 진정한 재회를 맞는다.
이 장면은 단지 감정적인 장면이 아니라, 지혜로운 아내가 신중하게 판단을 내리는 모습을 보여주며, 페넬로페의 캐릭터를 더욱 입체적으로 만든다.
5. 예술 작품 속 페넬로페
고전 회화 작품
- John William Waterhouse – Penelope and the Suitors (1912)
페넬로페가 베틀 앞에서 베를 짜며 구혼자들을 외면하는 장면을 섬세하게 묘사한 작품입니다. 그녀의 인내와 고독이 창밖의 구혼자들과 대비되며 드러나요. - Joseph Wright of Derby – Penelope Unraveling Her Web
밤마다 짠 베를 풀어 시간을 끌던 페넬로페의 지혜로운 계략을 표현한 작품이에요. - Charles-François Marchal – Penelope (1868)
고전적 분위기 속에서 페넬로페의 침묵과 기다림을 강조한 회화입니다.
문학과 현대 예술
- 마거릿 애트우드 – 『페넬로피아드』 (The Penelopiad)
페넬로페가 저승에서 자신의 삶을 회고하며 직접 목소리를 내는 소설로, 기존 신화를 비판적으로 재해석한 작품이에요. - 매들린 밀러 – 『키르케』 (Circe)
마녀 키르케의 시점에서 페넬로페를 바라보며, 그녀의 침착함과 모성을 새롭게 조명합니다. - Nalini Malani – Penelope (2012)
인도 출신 작가가 페넬로페를 억압받는 현대 여성의 상징으로 재해석한 비디오 설치 작품이에요.
현대 전시
- 페넬로페 클롯 (Penelope Clot) – Diálogos 展 (2024)
서울 인사동 가람화랑에서 열린 전시로, 자연과 감정의 대화를 통해 페넬로페의 내면을 탐구하는 작품들이 소개되었어요.
6. 현대에서의 페넬로페 상징
오늘날 페넬로페는 고전 문학 속 인내의 상징을 넘어서 지혜로운 여성 리더, 독립적인 판단자, 가정과 권력을 동시에 지킨 인물로 재해석된다. 그녀는 전통적인 여성상에 갇히지 않고, 스스로 결정을 내리고 상황을 이끄는 모습을 통해 다음과 같은 현대적 의미를 갖는다.
- 수동적 인내가 아닌 능동적 기다림
-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자기 주도적인 대응
- 권력과 가정을 동시에 지킨 현명한 여성상
- 불확실한 현실을 믿음으로 견뎌낸 상징
✅ 요약정리
- 인물
『오디세이아』 속 오디세우스의 아내, 이타카의 왕비 - 대표 이미지
기다림과 지혜의 상징, 자기 주도적인 여성, 가정을 지킨 왕비 - 주요 사건
- 트로이 전쟁 이후 남편 오디세우스를 20년간 기다림
- 수많은 구혼자들의 압박을 직조 계략(수의 짜기)으로 버팀
- 귀환한 오디세우스를 시험하며 신중하게 신분을 확인
- 상징 의미
- 능동적인 인내
- 지혜와 판단력
- 여성의 리더십
- 사랑과 책임의 조화
- 현대적 가치
- 전통적 여성상에서 벗어난 주체적이고 강인한 존재
- 불확실한 시대 속 믿음과 중심을 지키는 리더의 상징